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춤·냄새·날갯소리'로 꽃의 위치·거리 전달한대요

입력 : 2016.08.17 10:02

[꿀벌의 언어]

8자 춤으로 거리·방향 알리고 냄새로 꽃물의 맛·양 전해
날갯소리는 동료들 부르는 신호

계급에 따라 몸집 크기·모양 달라… 여왕벌 페로몬으로 벌들 다스려요

최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말벌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요. 특히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살다 우리나라까지 넘어온 '등검은말벌'이 도심까지 침투해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있다고 해요.

이렇게 등검은말벌이 늘어난 이유는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등검은말벌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등검은말벌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을 먹이 삼아 마구 잡아먹기 때문이에요. 꿀벌은 봄철 꽃가루를 옮겨 식물이 번식하고 열매를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 급격히 늘어나 꿀벌이 줄어들게 되면 자연 생태계도 파괴되고 양봉을 하거나 과일나무를 키우는 농가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답니다. 오늘은 우리 생태계를 지키는 꿀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꿀벌 나라는 철저한 계급사회

자연에서 사는 꿀벌은 큰 나무 구멍에 집(벌통)을 짓고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성 곤충이에요. 한 무리의 꿀벌은 한 마리의 여왕벌, 또는 그 여왕벌이 낳은 다른 여왕벌의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 친척 관계랍니다. 꿀벌들은 엄청난 규모의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죠.
꿀벌은 춤과 날갯소리, 냄새 등을 이용해 꽃이 있는 위치를 다른 꿀벌에게도 정확히 알려준다고 해요.
꿀벌은 춤과 날갯소리, 냄새 등을 이용해 꽃이 있는 위치를 다른 꿀벌에게도 정확히 알려준다고 해요. /조선일보 DB
하지만 꿀벌 사회는 동시에 엄격한 계급사회예요. 계급에 따라 모양도 다르고 몸집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달라요. 일벌은 가장 낮은 계급으로 무리 중에 가장 수가 많아요. 다른 벌에 비해 몸집이 작고, 암컷이지만 생식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요.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을 보살피는 것도 일벌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수벌은 꿀벌 중에 몸집이 가장 크고 힘이 세어 보여요. 수벌은 1년 단 한 번, 그리고 아주 적은 수만 태어나 귀족 같은 삶을 살아요. 수벌들이 할 일은 오로지 여왕벌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기만 한답니다.

꿀벌 무리를 다스리는 여왕벌은 수벌보다 덩치는 조금 작지만 배가 유난히 크게 발달되어 있지요. 여왕벌은 알을 낳고 벌들의 계급을 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수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 중 수정되지 않은 알에서 태어나요. 수정된 알에서는 암벌이 태어나는데, 여왕벌은 '여왕 물질'이라고 하는 페로몬을 턱에서 분비해 암벌들에게 묻혀요. 페로몬은 다른 암벌이 불임(不妊·생식능력이 없음)이 되도록 하는 효과가 있지요. 그래서 페로몬이 묻은 암벌들은 모두 생식능력을 잃어 여왕벌이 되지 못하고 일벌로 살아가게 됩니다. 페로몬은 여왕벌이 엄격한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무기이자 수단인 것이에요.

단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하는 여름철에는 여왕벌의 페로몬 분비는 멈추게 됩니다. 새로운 여왕벌을 낳기 전 일벌들은 집 안에 새로운 여왕의 알을 키울 요람을 만들어요. 여왕벌이 이 요람에 수정된 알을 낳으면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납니다. 일벌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로열젤리를 이 애벌레에게 먹여 새로운 여왕벌로 길러내요.

이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여왕벌이 될 때쯤 기존의 여왕벌과 일벌들은 집을 빠져나와 새로 집을 지을 곳을 찾아 나서요. 자신이 살던 집을 새로운 여왕벌에게 넘겨 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여왕벌이 벌들을 데리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는 것을 '분봉'이라고 해요. 새로운 여왕벌은 수컷과 짝짓기를 한 후 1년간 여러 번에 걸쳐 알을 낳아 새로운 꿀벌 무리를 꾸립니다. 여왕벌과 짝짓기를 마친 수벌은 곧 죽고 말아요.

양봉 농가에서는 분봉을 막기 위해 일벌들이 만든 요람을 일부러 없애기도 해요. 이렇게 하면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지 않아 여왕벌이 집을 떠나지 않고, 그럼 다른 벌들도 그 집에 계속 머물며 살아간답니다.

◇꿀벌의 언어는 '춤·냄새·날갯소리'

꽃이 활짝 피는 봄이 되면 일벌들은 분주히 꽃을 돌아다니며 꽃물을 모아요. 꽃밭을 발견한 꿀벌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다른 일벌들에게 꽃밭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꿀벌은 여러 방식으로 이런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요.

첫째 수단은 바로 춤이에요. 꽃밭을 발견한 꿀벌은 다른 일벌이 시식할 정도의 꽃물을 묻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곤 자신의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원을 그리며 날기 시작해요. 그러다 다시 수평 방향으로 8자를 그리며 춤을 춘 뒤 다른 일벌들에게 묻혀온 꽃물을 시식하도록 해요. 그러면 집에 있던 일벌들이 춤을 춘 꿀벌이 알려준 꽃밭으로 가 꽃물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꿀벌이 원을 그리며 나는 것은 다른 일벌들에게 "집 근처에 먹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8자를 그리는 춤은 집을 기준으로 꽃밭이 어느 방향에 있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고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토종 꿀벌은 꽃밭의 위치가 집에서 3m 이상 떨어져 있을 때에 8자를 그리는 춤을 추고, 양봉으로 키운 벌은 집에서 60m 이상 떨어진 곳에 꽃밭이 있을 때 8자를 그리며 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날개를 진동시켜 내는 소리도 꿀벌의 또 다른 언어예요. 꿀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사람은 2만㎐(헤르츠·파동이 1초에 몇 번 왕복운동했는지 가리키는 단위)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반면 꿀벌은 500㎐ 이하의 매우 낮은 음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꿀벌들은 자신들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주파수로만 날개를 진동해 소리를 내요. 가령 280㎐ 정도의 날갯소리는 다른 일벌들을 불러모으는 신호라고 합니다.

또 꿀벌은 춤추는 동안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데, 이 냄새가 다른 일벌들에게 자신이 다녀온 곳에 어떤 맛의 꿀이 있고, 얼마나 질이 좋고 양은 얼마나 되는지도 알려준다고 해요.

따끔한 침만 있는 줄 알았던 꿀벌이 이렇게 정교한 언어를 갖고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박시룡 한국교원대 교수(생물교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