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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아카시아꽃 향기를 아십니까?

[詩가 있는 풍경 20] 김명수 시인의 '아카시아꽃'

 

아카시아꽃 향기를 아십니까?

사람들이 몇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무심코 던지는 질문입니다

아카시아꽃은 5월달

우리집 언덕에도 피어 있는 꽃이지요.

아이들이 꽃이 피면 꽃을 따 먹고

벌들이 몰려 와서 꿀을 따 가지만

 

아카시아꽃 향기를 아십니까?

아카시아꽃은 우리 산천에

서양애들 키 같이 자라나는 꽃이지요.

봄이 되면 양봉가는 벌꿀을 따고

허약한 사람들은 이 꽃꿀로

장복을 한다지만 아카시아꽃

뿌리는 어느새 뻗고 뻗어서

고향산천 들판에 깊이 내리고

할아버지 선산 무덤속 깊이 파고 들지요.

 

아카시아꽃 향기를 아십니까?

아카시아꽃은 우리집 언덕에

어느덧 무성하게 피어 있는 꽃

불광이 좋고 마딘 나무라서

농부들이 땔감으로 말라 놓았다가

겨울 한철 구들을 덥힌다지만

아카시아꽃은 올해도 봄비를 맞고 무성히 자라

우리집 안방 구들밑까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납니다.

 

 

[신록]

지난주엔 봄비가 며칠째 내렸습니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가 그치고선 뒷편 낮은 산자락의 나무들도 훨씬 자랐습니다.
시원스레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 가지들 사이로
창밖 건너편 아파트 지붕이 크게 일렁입니다.
이제 5월의 바람은 아카시아 향기를 실어 보낼테지요.
이맘때쯤이면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동네 사람들은 한껏 겸손해집니다.

이 시 '아카시아꽃'은 김명수 시인의 첫 시집 '월식'(1980년 민음사 刊)에 실렸습니다.
'월식'엔 시인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초기 작품들이 많이 들어 있죠.
이 가운데 '어금니' 라는 시 전문.
시기가 대략 70년대 후반 무렵일테지만, 치료를 어디에서 받았는지
시인은 엉뚱하게도 '치과기공사에게 구멍을 파게 했다'고 적고 있군요.

 


어금니 하나가 닳고 닳아
고약한 냄새 풍기며
썩어 버리니

나는 훈장과 같이 너의 몸을
금으로 씌워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랴---

치과 기공사에게 구멍을 파게 하고
신경을 마취하고
번쩍거리는 금장식을 씌우고 나면

마침내 내가 죽고
내 턱뼈도 썩어 땅에 묻힐 때

나의 어금니 하나

나와 같이 썩지도 못하고
홀로 남아 허공에 떠돌며 다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