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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상자에 구멍 두 개 뚫었을 뿐인데 그 효과는?

2020.12.15 정책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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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층 강화됐다. 외부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짐작하다시피 택배기사다. 

어두운 저녁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배차량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저녁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배 차량을 볼 수 있었다.

   

며칠 전이다. 어두운 저녁에 택배 차량이 아파트 내 정차해 있는 것을 보았다. 종종 저녁에도 업무가 끝나지 않은 택배 차량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택배기사로부터 온 문자에서 배송예정시간을 늦은 저녁으로 표기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엔 늦은 저녁에 현관문의 초인종이 울린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택배의 도착이 반갑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저녁시간에 택배기사가 배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서일까? 택배기사가 들고 다니기 편하게 양 옆에 구멍을 뚫은 소포 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침 집 근처에서 가까운 서울중앙우체국에서 구멍 손잡이 소포 상자를 판매하고 있다기에 방문했다.

우첵국에 전시된 용량별 소포상자 실물.
우첵국에 전시된 용량별 소포 상자 실물.

 

우체국의 한쪽엔 소포 상자 실물이 용량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용자가 직접 실물을 보고 상자를 선택할 수 있다. 가끔 지인에게 물품을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집 근처 우체국에 물품을 들고 가 적합한 상자를 사서 넣은 뒤 그 자리에서 부친다. 소포를 부칠 때마다 우체국의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부터 우체국에서 구멍 손잡이 소포 상자를 판매하기 시작했으니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구멍 손잡이의 유무에 따라 노동 강도가 많이 달라졌다. 상자를 들었을 때 10% 가량 무게가 가벼워졌고, 매번 허리를 굽히지 않아서 좋다. 또한 차량에 싣고 내릴 때 한 손으로 상자를 움직일 수 있다. 

이일곤 집배실장.
이일곤 집배실장.

 

서울중앙우체국 우편물류과 이일곤 집배실장을 만나 구멍 손잡이 소포 상자 사용 소감을 들어봤다. 이일곤 실장은 지난 1991년 6월, 우체국으로 발령이 나서 지금 29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창기엔 우편물이 많았다. 1990년대만 해도 손으로 쓴 편지가 든 우편물을 배달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보급으로 손편지가 전자메일로 대체되면서 우편물이 줄어들었다. 그 자리를 택배 물량이 채우고 있다. 

택배기사들은 직업병이 있다고 한다. 무거운 택배를 운반하다 보니 어깨 및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간다. 이 실장도 7년 전 양쪽 어깨를 수술해야 했다. 비단 이 실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 택배기사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발표한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자에 손잡이를 만들 때 중량물 하중의 10% 이상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우체국에서 판매한 7kg 이상 물품에 사용한 소포 상자는 370만 개다.

구멍 손잡이가 없는 상자는 두 손으로 안고 꺼내야 한다.
구멍 손잡이가 없는 상자는 두 손으로 안고 꺼내야 한다.


이일곤 실장이 택배 상자를 운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구멍 손잡이가 없는 상자를 들고 내릴 때에 비해 구멍 손잡이가 있는 상자를 들고 내리는 모습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해 보였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한 해 농산물을 수확하는 데다가 김장철과 맞물려 있어서 택배 물량이 폭증하는 시기다. 구멍 손잡이가 없었을 때는 무거운 상자를 두 팔로 감싸 안아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면 허리를 굽혀야 한다.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이라면 더 힘들다.

구멍 손잡이가 있는 상자는 한 손으로 꺼낼 수 있다.
구멍 손잡이가 있는 상자는 한 손으로 꺼낼 수 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면서 우체국 택배도 15~20% 증가했다. 서울중앙우체국이 있는 명동은 관광지구여서 오가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상가를 드나드는 외국인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상가로 배달하는 택배 물량은 줄어들었다. 반면에 주택가로 배달하는 택배 물량이 늘어났다.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위탁하는 택배업체 종사자들은 총 29명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택배기사의 고충은 어떤 것일까? 이일곤 실장을 통해 그분들의 고충을 전해들었다.

택배 상자에 부착된 수신인의 연락처나 주소가 불명확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택배기사는 수신인에게 연락해서 주소를 확인한다. 하지만 수신인이 부재중이면 계속 기다릴 수 없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택배기사는 최적화된 동선을 따라 택배를 배달하므로 되돌아가면 그만큼 배달 시간이 지체된다. 택배를 부칠 때 수신인의 연락처와 주소를 정확히 확인해서 표기한다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체국 직원들이 우체국으로 접수된 택배상자를 옮기고 있다.
우체국 직원들이 우체국으로 접수된 택배 상자를 옮기고 있다.

 

택배 상자 포장이 부실해서 내용물이 뒤섞이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있다. 포장을 철저히 한다면 택배기사가 운반 도중에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을 것이다.

택배 상자가 무거운데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면 팔은 물론이거니와 다리까지 후들거린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택배를 받을 사람이 없다면 도로 갖고 내려와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을 선호해 문 앞에 두고 가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객이 직접 수령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서 헛걸음할 때가 있었다.

총알 배송, 새벽 배송 등 택배업체의 경쟁으로 주문과 동시에 얼마나 빨리 고객에게 도착하는지가 관건이다. 업체는 고객이 변심해서 반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빨리 배송하려고 한다. 고객은 본인이 원하는 물품을 빨리 받아서 좋긴 하지만, 그 와중에 택배기사의 고충은 가중되고 있다. ‘택배기사 인원을 늘리면 될 텐데?’라는 질문이 나온다. 하지만 택배업체는 인원을 늘리는 만큼 작업 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에 따른 부대비용이 증가해서 인원 충원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체국 택배를 위탁운영하는 택배기사도 구멍 손잡이 상자가 운반하기 쉽다고 한다.
우체국 택배를 위탁운영하는 택배기사도 구멍 손잡이 상자가 운반하기 쉽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상 조건과 상관없이 택배기사는 택배를 배달해야 한다. 하루 정해진 물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이 민원을 제기한다. 이일곤 실장은 “배송이 지연되더라도 양해해 주시면 좋겠다. 가끔 수고한다며 감사를 표하는 고객을 만나면 기운이 난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우정사업본부는 구멍 손잡이가 있는 우체국 소포 상자를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강원 지역 우체국부터 우선 판매하고 있다. 내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상자에 구멍 두 개를 뚫었을 뿐이다.
상자에 구멍 두 개를 뚫었을 뿐인데 훨씬 수월해졌단다.

 

우체국 소포 상자는 크기별로 1~5호로 나뉘는데, 구멍 손잡이는 7kg 이상 고중량 소포에 사용하는 5호 소포 상자에만 만들었다. 재질도 원지 배합을 강화해 고중량 적재에도 파손되지 않도록 내구성을 보강했다. 소포 우편물은 접수에서 배달까지 평균 10번 정도 작업이 이뤄진다. 무거운 상자는 들기가 어렵고 장갑을 끼고 옮기면 미끄러지기도 해 작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구멍 손잡이가 생겨서 고충을 덜어주고 있다. 소포 상자 분류부터 배달까지 들기 쉽고, 옮기기 편해서 집배원과 택배기사, 분류작업자 등의 반응이 좋다.

앞서 정부는 지난 11월 12일 택배기사의 하루 작업 시간을 정하고 주 5일 근무를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의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냥 소포 상자에 구멍만 두 개 뚫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청취할 수 있었다. 구멍 뚫린 소포 상자를 전국의 모든 택배기사가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객 입장에서 택배 배송이 며칠 지연되더라도 기다려 주는 여유를 발휘한다면 시간에 쫓겨서 저녁 늦게까지 택배를 배달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바꿔나가면 된다. 



윤혜숙
정책기자단|윤혜숙geowins1@naver.com
책으로 세상을 만나고 글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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