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옷차림은 말끔했다. 53살 홍모씨를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회생법원의 한 법정 앞에서 만났다. 회생법원을 찾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다. 빚 진자와 빚 받을 자.
홍씨는 빚을 진 경우다. 그는 꽤 많은 빚을 졌다. 수년 전부터 공사장 막노동부터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80대 노부모와 두 아들을 부양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홍씨 지갑 속 카드가 만들어 낸 빚덩이는 점점 커졌다.
◇평범한 자영업자이던 홍씨는 왜 빚쟁이가 됐을까사실 홍씨는 한때 돈 좀 만지던 사장님이었다. 1995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던 그의 호프집은 일평균 매출이 200만원일 정도로 장사가 꽤 잘 됐다. 소아마비를 앓던 아내와 단둘이서 일군 첫 가게에는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사업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일대 거리를 관리하던 깡패와 파출소 경찰들 주머니로 다달이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 설상가상 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터지며 홍씨는 결국 가게를 접었다.
그 이후 홍씨 부부는 작은 25인승 셔틀버스 하나로 밥벌이를 했다. 홍씨는 "버스를 몰며 매달 250만원씩 벌었다. 다달이 조금씩 마이너스가 생겼지만 생활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홍씨의 버스가 멈춘 건 지난 2015년 정부의 법 개정 때문이었다. 셔틀버스 내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영업 허가 등을 받는 등 자가용 유상운송 등록제가 실시된 것이다. "영업용 노란 넘버(번호판)를 달려면 7천만원이 든다는데 어떻게 바꿔요. 그래서 8백만원인가에 (차를) 팔아버렸죠."
◇"영세민인데 신용이 좋다고? 먹고살려니 카드 못 멈춰"버스를 판 뒤 홍씨는 주로 막노동을 했다. 공사장에서 쥐는 돈이 적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부모의 병간호와 고등학생 두 아들을 부양하기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 생활고 끝에 첫번째 이혼을 하고, 그다음 맞은 아내도 2년 만에 홍씨를 떠났다고 한다.
재작년쯤 오른쪽 어깨가 망가진 뒤로 집안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췌장암,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나마 받던 정부 지원금 액수마저 줄었다.
돈이 없어도 먹고사는 삶의 시계는 계속 돌아갔다. 홍씨가 사용한 카드는 모두 3개. 정신을 차렸을 때 카드빚은 4300만원이 돼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영세민인데 카드는 계속 발급되고 사용도 되더라고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신용등급이 3~4등급으로 좋은 편이었거든요. 카드사가 나한테 (발급) 해주면 안 되잖아요. 내가 돈이 없는데 카드를 쓸 수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
◇코로나19 할퀸 삶, 카드 빚 상환 포기 결정감당할 수 없게 불어버린 카드빚에 홍씨는 죽음을 생각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일용직 자리마저 끊긴 홍씨는 이내 재기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고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21살, 20살 아들을 생각할수록 우울감은 깊어졌다.
"아들이 최근 일을 시작했는데 그 돈마저 카드사에서 가져갈까봐 덜컥 두렵더라구요. 그래서 죽으려고 했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홍씨가 돌아서게 된 건 우연히 접한 유튜브 동영상 덕이었다. 동영상을 통해 파산면책이라는 제도를 알게 된 홍씨는 지난 7월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홍씨에게 파산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어깨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할 돈이 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어깨 수술을 받고 다시 돈을 버는 게 꿈입니다"고 말했다.
◇작년比 파산 10% 급증…"경기불황 장기화하면 더 심각"홍씨 사례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절벽에 놓인 사람들 중 적잖은 이들이 파산을 선택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법원에는 총 4만5631건의 개인파산 신청이 접수됐다. 전년 같은 기간(4만1717건)보다 9.3%(3914건) 늘어난 수치다.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서초동의 한 파산 전문 변호사는 "파산이 인용되면 다행이고, 반대로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파산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경기 불황이 길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NEWS:right}